기아소식
시련 딛고 글로벌 질주 기아 “앞으로도 도전”
작성자: 관리자1   |   작성일: 2025.12.08
창립 80주년 행사 개최

자전거 부품사 ‘경성정공’서 출발
역경·부도 위기 딛고 현대차 품에
디자인·사업 재편… 세계기업 우뚝
안전 주력… 미래 콘셉트카도 공개


자전거 부품 회사 ‘경성정공’으로 출발해 한국 전쟁 중 첫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선보인 후 이제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거듭난 기아가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기아의 성장 과정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 현대사와 겹친다. 한때 ‘봉고’ 열풍으로 국내 시장을 주름 잡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격탄에 쓰러진 기아는 현대자동차 품에 안긴 뒤 사명, 디자인, 사업 구조를 바꾸며 새롭게 재탄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 번째)이 이학영 국회부의장(〃 세 번째), 송호성 기아 사장(〃 다섯 번째) 등과 함께 지난 5일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래 콘셉트카인 ‘비전 메타투리스모’를 공개하며 박수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지난 5일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아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과거에 많은 굴곡이 있었기에 결국 (기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도전”이라며 “(고 김철호) 창업주가 가진 생각을 계속하고 (정몽구) 명예회장님의 생각도 이어가면 되겠다”고 말했다.

기아는 이날 80년 역사를 담은 사사(社史)인 ‘기아 80년’을 공개했다. 고 김철호 창업주가 1944년 경성정공을 세운 이래 최초국산 자전거와 오토바이, 삼륜차, 승용차를 만들고 두 차례 부도 위기 등 난관을 극복해온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김 창업주는 1944년 창립 연설에서 “가난을 추방하고 자주 국가를 세우기 위해선 공업화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6년 뒤 피란수도 부산에서 첫 자전거인 ‘3000리호’를 생산했다. 주요 기술을 해외에 의존해 자동차를 만들면서 기술 자립에 힘써 1980년 무렵에는 국산화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1981년 전두환정부의 자동차산업 통폐합 조치로 승용차 사업을 강제로 접었지만, 승합차 시장으로 눈을 돌려 일본 마쓰다의 ‘봉고’를 면허생산해 대박을 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승용차 시장에 복귀해 수출전략형 소형차 ‘프라이드’를 출시했다. ‘세피아’, ‘스포티지’ 등 전 국민에 친숙한 브랜드를 내놨으나 1997년 분식회계, 무리한 사업 확장 등의 여파로 ‘부도 유예’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1998년 6월 채권단이 국제 입찰을 결정하며 해외 매각 위기에 처하자 현대차가 기아를 끌어안았고, 2004년 정 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디자인 경영’의 결실이었던 ‘K 시리즈’를 출시하며 성장세를 달렸으나, 2015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촉발한 중국 시장 위기를 거쳐 현재는 세계 시장에 연 30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양산차 브랜드 이미지가 강한 기아는 중국발 저가 공세에 맞서 내부 구조를 목적에 맞춰 바꿀 수 있는 전기차인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를 미래 주력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정 회장은 “기아는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라며 “(자율 주행과 관련해선) 저희가 좀 늦은 편이나 중국 업체나 테슬라와의 격차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기 때문에 안전에 더 초점을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아는 미래 비전을 담은 콘셉트카인 ‘비전 메타투리스모’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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