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시장서 현대차그룹 판매 전년比 28% 감소
관세 장벽에 수요 정체, 경쟁사 신차 효과 등 원인 거론
생산·판매 전략 조정 기류…미국外 전기차 시장 공략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차량 판매량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지만, 유독 전기차 판매량 만큼은 눈에 띄게 급감하며 현지 업체에 점유율 2위 자리마저 내줬다. 자국 기업 우선주의에 바탕한 미국 관세 정책과 전기차 수요 정체 등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전기차 생산량 조절, 미국 외 전기차 시장 공략 등 생산·판매 전략을 조정하는 기류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차별화 된 사양을 갖춘 합리적 가격의 새 전기차 모델을 내놓기 위한 연구·개발도 지속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상반기 美 시장서 전기차 판매량 2위 자리 뺏겨
1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순수 전기차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1~6월) 현대차그룹의 판매량은 4만 453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 1883대에)보다 28% 줄었다. 전체 차량 판매량은 90만대에 육박하며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의 미국 판매 실적을 기록했는데, 유독 전기차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우선 기아 전기차의 판매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기아의 판매량은 1만 3674대로, 전년 동기(2만 9392대) 대비 53.4% 감소하며 반토막 났다. 특히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니로EV의 판매량이 67% 줄어든 2861대로 집계됐다. 준중형 전기 SUV인 EV6는 5875대, 준대형 전기 SUV인 EV9은 4938대가 팔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감소폭이 각각 46.3%, 48.9%에 달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량(제네시스 포함)도 소폭 줄었다. 상반기 판매량은 3만 859대로 전년 같은 기간 3만 2491대에 비해 5% 줄었다.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6의 판매량은 6312대로 감소폭은 8.6%였다. 다만, 주력 모델인 준중형 전기 SUV 아이오닉5는 1만 9091대가 팔려 약 2% 증가했고,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도 올해 5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본격 판매되기 시작해 기아에 비해 감소폭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전반적인 판매량 감소로 올해 상반기 미국 순수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3.4%포인트 감소한 7.6%로 집계됐다.
특히 시장점유율에 2위 자리를 내 준 것은 뼈아프다. 1위는 테슬라(42.5%)였고, 작년까지 현대차·기아 지키고 있던 2위 자리에는 13.3%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제너럴모터스(GM)가 올라섰다. 현대차·기아는 3위로 순위가 한 계단 내려갔는데, 2022년 2위 자리에 오른 지 3년 만의 점유율 순위 하락이다.
"전기차 수요 정체…트럼프 관세 장벽도 영향"
현대차그룹의 고전은 주요 시장인 미국 내 순수 전기차 수요 자체가 정체된 데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효과가 악영향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전문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본격화 된 미국의 수입 자동차 관세 영향으로 한국 기업의 수출이 많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관세 장벽 안에 있는 미국 완성차 기업은 이득을 봤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공장에서 생산돼 미국에서 팔린 기아 전기차는 자동차 품목 관세(25%)가 발효된 지난 4월 1024대로, 3월 1967대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후에도 감소세가 지속돼 6월에는 499대로 주저앉았다. 1년 전 5738대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EV6(2024년), 니로EV(2022년) 등 주력 전기차의 변경 모델이 시장에 나온 지 시간이 꽤 흘렀다는 점도 판매량 감소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국 전기차는 주력 모델의 연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판매량 감소도 있었을 것"이라며 "반면에 GM의 전기차들은 상대적으로 최신모델이고 가격 경쟁력이 있어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美시장서 하이브리드車 생산 늘리고…유럽·인도 등 전기차 시장 공략 전망
현대차그룹은 단기적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순수 전기차 생산량 조절에 나섰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으로 만들어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의 아이오닉5, 9 생산·판매량은 본격 공장 가동을 시작한 3월 5335대에서 4월 8천대를 넘어선 뒤 5월 8674대까지 늘어났으나, 6월 들어 다시 5361대 수준으로 꺾였다. 반면 하이브리드 차량의 메타플랜트 공장 생산을 예고했던 대로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량은 13만 6180대로, 1년 전보다 45.3%나 증가하며 전기차와 상반된 실적 호조를 보였다. 하이브리드차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연비가 뛰어나 유지비가 적게 들고, 충전 인프라 부족에 따른 불편도 전기차보다 적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외 시장을 겨냥한 현대차그룹의 순수 전기차 판매 전략엔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마크라인스의 최신 집계를 보면,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순수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상반기 10만대에 육박하며 전년 동기 대비 40% 넘게 증가해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4위 자리를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인도도 또 다른 포인트로 꼽힌다. 연간 400만대의 자동차가 팔리는 세계 3위 시장인 인도는 공격적인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국 전기차가 아직 잠식하지 못한 시장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인도 현지 공장에서 처음 생산한 전기 SUV '크레타 EV'를 지난 1월 출시했으며, 2030년까지 인도에서 전기차 5종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기차 전환 대비해 연구·개발 지속해야…내연기관車 만큼 가격 떨어져야"
업계에선 전기차로의 전환이 장기적인 변화 흐름인 만큼 가격 경쟁력 확보가 필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전문가는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경차를 비롯한 차량에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등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미국에서 전기차 신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약 1040만 원)을 주는 기존 세액 공제 혜택이 오는 9월 말 조기 종료된다는 점도 언급하며 "전기차는 가격이 내연기관 차량만큼 확 떨어져야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능과 안전성을 갖추는 건 기본이다. 특히 미국에선 보조금이 없이도 내연기관과 경쟁할 수 있는 전기차가 나와야 할 것"이라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 시장 내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기아의 경우 높은 차 가격에 신음하고 있는 미국 다수 고객층을 겨냥해 실용성을 앞세운 브랜딩 전략 수립과 중·소형급 상품성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또 다른 전문가는 "미국 고객들을 분석해보면, 다수층의 자동차 구매력이 약화됐다. 중고차 시장에서의 수요가 늘어나는 흐름도 보이고 있다. 전기차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하이브리드차가 인기를 얻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기존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중·소형급 차종에서 디지털 기능 등 편의 사양을 고도화 한, 합리적인 가격의 모델을 내놓기 위한 연구·개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액 공제 혜택까지 예정대로 없어지면 미국 시장에서의 전기차 인기는 더 식을 것으로 보인다"며 "혜택이 없어지더라도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차별화 된 모델을 내놓는다면 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